강서구 문화재2 소개
안녕하세요.
강서구호빠입니다.
오늘은 강서구호빠와 함께 강서구 문화재중 진산세고와 약사사 석불 입상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서구 문화재2
진산세고
| 지정번호 | 보물 제1290호 |
|---|---|
| 지정일자 | 1988년 12월 18일 |
| 관리자 | – |
| 시대 | 조선조 성종7년(1476) |
세계 최초의 화훼재배 전문 기술서적
이 책은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문신·학자 강회백(姜淮伯)·강석덕(姜碩德)·강희안(姜希顔) 등의 3대에 걸친 문집이다.
강희안은 세조 때 단종복위운동을 꾀하다가 성삼문과 함께 옥고를 치루던 중, 수양대군이 너무 아까운 선비라서 죽이지
못하고 풀어 주었다.
그는 혼자 살아남은 것이 부끄러워 초야에 묻혀 살면서 30년 이상을 오직 화훼재배만을 연구하며 세월을 보냈다.
1476년(성종 7년) 강회백의 손자 강희맹(姜希盟)이 편집·간행했다. 책의 첫머리에는 신숙주(申叔舟)·최항(崔恒)·
정창손(鄭昌孫)의 서문이 있다. 권말에는 김종직(金宗直)·서거정(徐居正) 등의 5편의 발문이 실려 있다. 강희안은 증조부·
조부·부친의 문집을 한데 모아 정리할 때, 자신이 연구한 화훼재배 기술을 기록한 『양화소록(養花小錄)』을 뒷부분에 덧붙여
『진산세고』라는 문집을 저술했다.
나중에는 화훼재배 기술서인 『양화소록』만이 별도로 많은 수량이 인쇄되어 널리 퍼져 나갔다.『양화소록』의 내용에는
노송(老松)·만년송(萬年松)·오반죽(烏班竹)·국화(菊花)..종분내화수법(種盆內花樹法)·최화법(催花法)·백화기의(百花忌宜)…
양화사(養花辭) 등이 수록되어 있다.
『진산세고(晉山世稿)』는 조선 시대의 세고 가운데 가장 앞선 것이다. 특히『진산세고(晉山世稿)의 4권 1책 중 권4권에
수록된 『양화소록』은 온갖 화초를 개량하는 기법을 자세히 기록한 책으로서 세계 최초의 화훼재배 기술서적이다.
그중 『양화소록』1권은 일본으로 건너가 현재 일본의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오늘날 일본이 분재 등 화훼재배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국으로 발돋음하게 된 밑바탕은 바로 『양화소록』이 만들어 준 셈이다. 따라서 『진산세고』는 『양화소록』의
모체이며 원본인 것이다.
약사사 석불 입상
| 지정번호 | 서울시유형문화재 제40호 |
|---|---|
| 지정일자 | 1980년 6월 11일 |
| 관리자 | 강서구청장 |
| 시대 | 고려후기 |
둥글고 친근한 모습의 고려말기의 석불
높이 132m인 개화산은 원래 이름은 주룡산이었다. 주룡 선생이 돌아간 후 기이한 꽃 한 송이가 피어 사람들이
개화산(開化山)이라 불렀다고 한다. 높이 3.3m, 어깨폭 0.9m, 보관(寶冠)의 직경 1m 규모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불은
개화산 약사사 경내에 위치한다.
본래 석불의 형태는 기단을 마련하지 않고 아래쪽은 지하에 매몰되어 있다. 그러나 석불 이전 당시에 기단석을 새로
만들어 석불을 올려놓았다.
두부(頭部)에는 원형의 석조보관을 놓았다.
보관의 밑부분에는 상당수에 달하는 명문(銘文)이 있으나 판독이 불가능한 실정이다.
석불의 두 볼은 풍만한 편이며 코와 볼이 약간 손상된 흔적이 있다. 하지만 그런대로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특히 두툼한 두 눈과 엷은 미소를 머금은 엄숙한 입술 등에서 인상적인 조형기법이 두드러진다. 이와 동시에 약사사 3층
석탑과 거의 같은 고려 시대 말기에 건립된 것으로 여겨진다.
약사사 석불은 금동삼존불상의 중심에 높게 자리하여 당당히 사찰의 본존불로서 맡은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러나 불상의 일반적인 특징을 제대로 갖추지 않아 마치 무덤을 지키는 석인상(石人像), 혹은 민간신앙의 대상인 장승과
같은 형태를 보인다.
얼굴은 몸체에 비해 크게 표현되어 있는 대신에 어깨가 좁고 위축되어 있어 목과 거의 붙어 있다. 얼굴 표현에서도
마찬가지로 약간 튀어나온 왕방울만한 눈과 삼각형의 코, 그리고 일자형(一字形)의 입술 등에서 기괴하면서도 투박하고
거친 듯한 조각기법이 나타나 있다. 또한 어두운 돌에서 잘 드러나지 않은 이목구비를 조금 더 뚜렷하게 보이도록 최근에
조각을 더한 흔적이 있다.
법의는 양어깨를 덮고 있는 통견(通肩)으로 걸쳤으며 가슴 위로는 X자로 여미어 입은 내의(內衣)가 표현되었다.
옷 주름은 형식적으로 간략하게 처리되어 있지만 팔목 안쪽으로 소맷부리가 보인다. 손목이 많이 드러나 있는 두 손은 가슴
앞으로 모아 연꽃 한 송이를 쥐고 있다.
약사사 석불은 일반적으로 불상의 형태에서 매우 벗어나 있지만 법당 안에 본존불로 봉안되어 있다.
전반적으로 토속적인 경향이 강한 것으로 조선 시대 민간신앙에 의해 조성된 불상으로 보인다.
출처 강서구청
강서구 문화재2 소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