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역사 전설3 소개
안녕하세요.
강서구호빠입니다.
오늘은 강서구호빠와 함께 강서구의 전설 이문(里門), 경문(慶門), “증미(曾米)마을” 유래, 화곡동 지명유래, 화곡동 진흙은 옹기그릇 원료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서구 역사 전설3
이문(里門), 경문(慶門)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
조선조 7대 임금인 세조가 보위에 오르기 전의 일이다. 어느날 수양대군은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말을 타고 통진 쪽으로
다녀오다가 길을 잃고 헤매다가 발산동 광명리에서 하루를 쉬어가게 되었다.
원래 이 마을에는 효자와 효부가 많이 살고 있었는데 수양대군은 하룻밤을 묵으면서 이곳 사람들의 어른을 공경하는 마음과
행동을 보고 깊은 감동을 받았다. 날이 밝아 도성으로 돌아간 수양대군은 마을 사람들의 효성을 기리기 위해 마을에 기념문을
세워주고, 축하하는 경문(慶門)도 세워주었다고 한다.
“증미(曾米)마을” 유래
염창동 전설
삼남지방에서 조세로 거둔 양곡을 싣고 한양으로 올라오는 조운선이 염창리 앞 한강 여울목에서 가끔 침몰하는 일이 있었다.
염창리 앞 강폭은 좁은데다가 물살이 빨라 상류에서 흘러 내린 토사가 쌓이거나 괘여 강바닥이 고르지 못했기에 배가 자칫
침몰하는 것이다. 배가 침몰하면 부근의 마을사람들이 불속으로 들어가 양곡을 건지게 되었기에 이 마을을 쌀을 건진다는
뜻의 증미마을이라 하였다.
강서구 역사 전설3 화곡동 지명유래
화곡5동 이야기
지금의 화곡5동은 옛날 쉬울고개로서 길손이 역말 너머 염창동으로 가는 도중 이 고개에서 쉬어 간다는 고개였다.
어는 양천현감이 어느해 가을날 이 고개에서 저멀리 신월동 쪽을 바라보니 골짜기 사이 아래에 누렇게 잘익은 벼가 비단같이
펼쳐져 있고 공같이 둥근불체를 굴리면 촘촘한 벼이삭위를 굴러 땅에 떨어지지 않고 저 아래까지 굴러 갈것만 같은 모습을
보고 “골짜기 사이의 기름진 땅에 벼가 잘 되는 마을”이라고 하여 이곳 지명을 화곡리라고 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곡동 진흙은 옹기그릇 원료
화곡7동 이야기
화곡동 일대는 원래 진흙땅으로 도기를 만드는 원료로는 최상급으로 1925년 을축년 대홍수 이후 한강상류의 도기공장들이
염창동에 이전해 와서 이곳 진흙으로 도기(옹기그릇)를 만들게 되었다.
이곳 화곡7동 논밭을 가진 땅주인들은 진흙을 팔아서 돈을 벌고 기름진 진흙땅을 무상으로 갈아엎어주니 농사가 잘되어
돈을 벌고 까치산 산기슭의 흙을 파냄으로 자연히 밭이 논으로 바뀌어지게 되니 땅값이 올라가고 대다수의 주민들에게는
고통만 안겨주는 진흙덕택에 부자가 된 땅주인이 많았다고 한다.
출처 강서문화관광
강서구 역사 전설3 소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