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역사인물1 소개
안녕하세요.
강서구호빠입니다.
오늘은 강서구호빠와 함께 강서구의 역사인물중 조선 최고의 명의, 허준과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서구 역사인물1
허준
조선 최고의 명의! 구암 허준(1537~1615)

서울 강서구에서 태어난 허준은 궁중에서 내의원의 의관으로 벼슬을 시작해 국왕의 병을 진료하는 수의로써 활약을 하였다.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전통의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한 『동의보감(東醫寶鑑)』을 완성하여 한의학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으며, 이외에도 전염병 관련 서적을 비롯하여 여러 의서들을 출간하는 등 백성들의 질병퇴치에 힘을 기울였다.
동의보감(東醫寶鑑)

동의보감』은 선조 30년(1597) 임금의 건강을 돌보는 어의였던 허준이 선조의 명을 받아 실용성과 과학성을 바탕으로
당시까지의 동양의학의 모든 지식을 집대성해 체계적으로 서술한 의서로, 광해군 2년(1610)에 완성하고 광해군 5년(1613)에
초판을 간행하였다.
이는 총 25권 25책으로 목활자로 발행하였다.『동의보감』은 과학적 입장에서 당시의 모든 의학 지식을 정리하였는데, 국내외 180여 종의 의서를 참고하여 내용이 풍부하다.
1,212종의 약재에 대한 자료와 4,497종의 처방을 수록하고 있는데, 특히 약재들의 이름이 한글로 수록 되어 있어 국어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되고 있다.
우리나라 의학을 ‘동의’라고 칭하며 독자적인 전통을 강조한 허준의 『동의보감』은 중국, 일본, 대만 등지에서 수십 차례
간행되어 동아시아 의학 발달에 크게 이바지했다. 또 세계 최초로 예방 의학과 국가적 보건정책에 대한 관념을 구축했다.
이러한 의학적 · 역사적 ·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9년 7월 보건의학서로는 최초로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
겸재 정선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1676~1759)

진경산수화의 대가 겸재 정선은 수백여 점의 작품을 남긴 조선시대 대표적인 화가이다. 그는 1740년 12월, 양천현령(지금의
강서구청장)으로 부임하여 만 5년동안 지금의 강서구 일대를 중심으로 한 한강변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려 강서지역을 진경
산수의 산실로 만들었다.
정선은 우리나라의 실재하는 풍경을 직접 여행을 통해 가장 생생하고 사실적으로 전달해낼 수 있는 진경산수화풍을 확립시
켜 한국 회화사의 새로운 전통을 수립한 인물이다. 그의 진경산수화는 양천현령으로 근무하였을 때 원숙한 경지에 올라, 진
경시의 대가인 이병연과 시화를 교환하며 《경교명승첩》과 같은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이때 그렸던 그림으로는 양천
현아, 종해청조, 개화사, 이수정, 소악후월, 목멱조돈 등이 있다.
강서를 주제로 한 정선의 작품들
양천현아(陽川縣衙)영조 16년(1740) 당시 양천현아 모습.
현재 이곳은 강서구 가양동 239일대 입니다.
이수정(李水亭)강서구 염창동 도당산(都當山·지금의 증산) 상봉 있던 정자입니다.
설평기려 (雪坪驥驢)겸재가 나귀 타고 떠났던 곳은 지금의 강서구 가양동 239 부근의 양천 현아 입구이고, 마주 보이는
우장산은 내발산동 우장공원에 해당합니다.
종해청조 (宗海聽潮)그림의 제목은 ‘양천현 동헌인 종해헌에 앉아서 조수 밀리는 소리를 듣는다’는 뜻입니다.
목멱조돈 (木覓朝暾)목멱산은 서울 남산의 다른 이름입니다.
한강 하류 양천현아 즉, 지금의 가양동 쪽에서 보면 목멱산 동쪽의 낮은 봉우리 가엇갈려 나와 먼저 보이고 서쪽의 높은
봉우리가 그 뒤로 서기 때문에 오른쪽 봉우리가 높은데도 왼쪽 봉우리가 높게 보입니다.
빙천부신 (氷遷負薪)그림의 배경은 소악루에서 내려다 본 정경이고 지금의 가양동 219 일대의 모습이다.
출처 강서문화관광
강서구 역사인물1 소개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