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구 문화재4

강서구 문화재4 소개

안녕하세요.

강서구호빠입니다.

오늘은 강서구호빠와 함께 강서구 문화재중 풍산심씨 문정공파 묘역, 양천향교 터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서구 문화재4

강서구에는 국가지정문화제 7개(보물5/사적1/등록문화제1)와 서울시 지정문화재 8개(유형문화재4, 시기념물2,
무형문화재1, 문화재자료1)로 총 15개가 있으며, 전통사찰, 정자 등 많은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는 전통 있는 도시입니다.

풍산심씨 문정공파 묘역

지정번호서울시유형문화재 제77호
지정일자1991년 12월 24일
관리자강서구청장
시대조선

조선 정국공신 심정공과 그 후손의 묘역조선 11대 중종 임금 때 우의정 및 정국공신인 “심정공”과 그 자손인 심사손공,
심사순공 및 손자인 조선 청백리 심수경공 등 풍산심씨 가문의 분묘 약 50여 기가 있다.
그중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4분의 분묘와 그에 딸린 묘비, 상석 등을 문화재로 지정 보호하게 된 것이다. 이곳 풍산심씨
묘역 일대는 심씨 집성촌으로 심씨마을이라고 불렀다.

한편 이곳은 능골·능리라 하여 고려 때의 왕릉지와 인조의 생부인 원종의 능 천장지로 선정되기도 하여 그 이름이 생기기도
했다. 그런데 이 개화산을 주산으로 한 명당자리에 풍산 심씨 묘역이 자리하고 있다.정국공신 심정공은 연산군 12년에
반정하여 연산군을 추방하고 중종을 옹립했다.
그러나 신진사류인 조광조 일파의 탄핵으로 파직되고 정국공신직도 삭탈되었다.
이에 원한을 품고 기묘사화를 일으켜 사류들을 숙청했다.
황해도 관찰사, 개성유수, 형조판서, 예조판서, 한성판윤, 사헌부대사헌을 거쳐 우의정, 좌의정을 등을 지냈다.

그는 1527년(중종 22년)에 우의정·좌의정에 올랐다.
이때 개화산 근처에 소요정(逍遙亭)을 짓고 일가를 이루며 살았다.
그 뒤에 복성군(福城君)의 옥사에 연루되어 김안로의 탄핵으로 강서(江西)에 유배되었다.
그러다가 61세의 나이로 사사되어 양천 서쪽 개화리에 장사 지냈다.

부인은 1534년에 합장되었다.심사손공(1493∼1528년)은 대과에 급제하여 숭문원·예문관·승정원에서 문한을 관장했다.
또한 1523년 비변사 낭관으로 서북면 야인(野人) 정벌에 공을 세웠다. 당상관에 올라 만포진첨절제사로 변방 수비에
힘쓰다가 야인에게 살해당했다.
이 해에 양천현 서쪽 개화산의 서북쪽 기슭에 동남향으로 자리 잡아 장사 지냈다.

심사순공

심사순공(1496∼1531년)은 1517년(중종 12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사가독서를 하고 홍문관 부제학이 되었다.
1531년 김안로 일파가 꾸민 종루괘서사건에 연루되어 추국(推鞫:죄상을 다스리는 것)을 당하여 세상을 떠났다.
이듬해에 현 위치에 장사 지냈고, 1569년에 부인 이씨가 합장되었다.

묘갈문의 크기는 총 높이 218cm, 비 높이 120cm, 폭 59cm, 두께 20cm로 1579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조카 판서 심수경이 짓고, 도사 심일취가 썼다.

심수경공(1516∼1599년)은 1546년(명종 1년)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대사헌·도승지·영중추부사와 무신직도 수행한
유장(儒將)이었다.
심정공의 손자이며 심사손공의 아들인 심수경공은 6조의 판서, 병마절도사, 한성판윤, 승정원, 도승지, 사간원, 우의정
등을 역임했다. 또한 조선청백리로서 임진왜란 당시 팔도의병대장으로 활약하는 등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신명을 바친 훌륭한
사람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삼도체찰사가 되어 의병을 모집했다.
문장과 글씨에도 능하여 직접 자신의 묘갈문을 짓고 후일에 고치지 말라고 유언했다.
부인 신씨와 쌍분으로 모셔져 있다.
묘갈문의 크기는 총 높이 295cm, 비 높이 175cm, 폭 75cm, 두께 23cm로 1601년에 세워졌다. 비문은 둘째 아들 심일취가 썼다. 1991년(12월 24일)에 서울특별시 지방지정문화재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양천향교 터

지정번호서울시기념물 제8호
지정일자1990년 6월 8일
관리자강서구청장
시대조선 태종12(1411)

조선시대 교육의 산실
향교는 조선시대 우리의 교육문화를 주도해 온 문화유산으로 유가 공자(孔子)를 비롯한 동양 5성과 송조4현 및 동국18현
등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문묘행사를 담당하며 또한 조선조 공립 중등교육기관으로 지방향리들의 자제를 교육하는
기관이었다.
양천향교는 전국에 남아있는 234개 향교중 서울에서는 유일한 것으로 조선조 태종12년(1411년)에 창건돼 노후된 것을
지난 81년에 전면 복원했다.
건물로는 대성전(大聖殿)을 비록 명륜당(明倫堂), 전사청(典祀廳), 동제, 서제, 내삼문, 외삼문과 부속건물 등 8동이 있다.
현재 양천향교에서는 봄과 가을 2회에 걸쳐 석전대제를 지내고 있으며 이와 함께 지역주민과 초·중학생을 대상으로 한문과
서예 및 사군자를 가르치는 등 옛 전통문화 재현에 노력하고 있다.

급변하는 물질문명의 발달과 함께 우리의 전통문화가 점점 자취를 감추어 가고 있는 이때, 우리 조상들의 교육문화의
산실이었던 양천향교가 강서구민은 물론 나아가 서울시민들의 정신적 근간으로 자리 잡아 옛 선비정신을 되살리며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정신적, 교육적 가치를 드높이는 교육기관이며 문화유산이다. 

홍살문을 지나 정문 왼쪽에는 1600년부터 1800년 전후 양천현감으로 재직하였던 분들의 9개의 선정비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던 비석들을 모아둔 비림입니다.·

  • 홍살문 : 성과 속의 경계로서 속의 때를 벗고 성스럽고 경건한 마음으로 들어온다는 의미입니다.·
  • 대성전 : 유가의 공자를 비롯한 동양5성과 송조4현 및 우리나라 18현 등 성현들의 제사를 모시는 곳.·
  • 동재· 서재 : 유생들이 거처하면서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곳·
  • 명륜당 : 맹자와 공자 유교경전을 공부·
  • 외삼문· 내삼문 : 세 개의 대문중 가운데는 임금이 다니는 어문이고, 현재는 제사지낼 때 혼백(귀신)들이 다니는 문으로
  • 가운데 문을 활짝 열어 놓음. 일반인들은 오른쪽, 왼쪽문을 이용·
  • 전사청 :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음식을 준비하고, 그릇 등을 보관하는 곳.

출처 강서구청

강서구 문화재4 소개 끝

강서구호빠 강서구 문화재4
홈으로
강서구호빠 강서구 문화재4
구인구직은 호빠야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